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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스타 골프프로/남자 골프스타즈

미국 골프의 상징 '아놀드 파머'

by protocall 2024. 3. 1.

골프의 왕(The King of Golf)

아놀드 파머는 골프의 왕(The King of Golf)으로 불리며 타이거 우즈가 등장하기 전까지 미 국민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골퍼다.

 

 

우리 어릴적 부잣집 도련님이 입던 아놀드파머 옷의 우산 로고를 보았을 때 골프웨어인지를 몰랐다. 아니 골프왕 아놀드파머 인지도 잘 몰랐다. 백화점에서 사는 고급 어린이 아동복 김민재 아동복 같은 그런 옷이라고들 생각했다. 

아놀드 파머 브랜드 로고

 

미국의 노동자 계급이 나은 스타플레이어로서 항상 웃는 얼굴과 우람한 체구에서 품어져 나오는 호쾌하고 파워풀한 스윙을 구사했으며, 강력한 카리스마와 함께 도전적이고 공격적인 골프를 즐겼다.

 

마스터스 그린재킷을 착용한 아놀드 파머

 

늘 겸손한 자세와 매너로 대중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았으며, 골프를 부자들의 사교적인 스포츠에서 일반 대중들이 얼마든지 도전하고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그가 데뷔하던 1950년대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TV가 급격하게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스포츠 중계가 일상화됐는데 골프 역시 꾸준하게 전파를 타며 보고 즐기는 스포츠로 인식의 대전환기를 맞이한다. 여기에 아놀드 파머가 부각되며 단숨에 미국을 대표하는 골프영웅으로 등극했다.

 

 

아놀드 파머에게 골프는 필연이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소아마비를 앓아온 아버지로부터 골프를 배웠는데 아버지 밀프레드 파머는 골프 레슨코치와 골프장 코스 관리를 평생의 업으로 삼았던 사람이었다.

 

10대 시절 아놀드

 

아버지의 지도아래 3살 때부터 클럽을 잡았던 아놀드 파머는 골프 장학금을 밑천삼아 대학 진학에 성공했고 재학 시절 최고의 아마추어 골프 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아버지와 함께한 아놀드 파머

 

 

젊은 시절 동료이자 절친한 친구의 교통사고 사망소식으로 잠시 클럽을 놓게 되는데 이 시기 아놀드는 해안경비대에 입대하여 3년간 군에 복무한다. 잠시 공백기를 갖게 되지만 골프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식지 않았고 훈련소에 있는 골프코스에서 그만의 골프를 계속 가다듬었다.

 

군복무 시절

 

1954년 프로 골퍼로 전향한 아놀드 파머는 PGA 투어 통산 62승을 포함 프로 통산 95승, 메이저 대회 7승을 거두며 동시대 함께 활약했던 잭 니클라우스 등과 함께 가장 위대한 골퍼 중 한 명으로 평가 받는다. 4대 메이저 대회 중 PGA 챔피언십 우승에 실패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아놀드 파머는 골프가 돈이 되는 산업임을 스스로 입증해낸 투어 골퍼였다. 그는 총 네 차례 PGA투어 상금 왕을 차지하면서 한 시즌에 처음 연간 상금 10만 달러를 넘긴 최초의 선수이기도 하다.

 

또한 처음으로 우승 상금으로 100만 달러를 돌파한 프로 골퍼이면서 80세가 넘어서도, 해마다 스포츠 매니지먼트 사업 등으로 수천만 달러가 넘는 돈을 번 사업가였다. 전 세계 300개가 넘는 골프장 코스 설계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면서 골프 보급과 대중화에 앞장선 장본인이며 미국 골프 코스 건축가 협회 회원이었다.

 

게리 플레이어, 아놀드 파머, 잭 니클라우스

 

1960년대 그 시절을 풍미했던 프로 골퍼 3총사가 있었는데 바로 잭 니클라우스, 게리 플레이어 그리고 아놀드 파머다.

 

굵은 팔뚝에서 우러나오는 강력한 비거리와 웬만한 영화배우를 능가하는 수려한 외모, 그리고 화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운영과 넘치는 카리스마로 그는 출전하는 대회마다 구름관중을 몰고 다녔는데 동시대 함께 활약했던 삼총사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오늘날 스타플레이어의 인기를 활용한 거대 스포츠 매니지먼트사업도 아놀드 파머로부터 시작된다. 전담 변호사와 손잡고 시작한 스포츠 마케팅 사업은 거대 산업이 되었고 파머 자신도 골프 대회 운영과 골프 의류 제조와 유통 등 다양한 연관 사업을 일으켜 큰 성공을 거뒀다. 심지어 골프 이외에 비즈니스 중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식음료 사업도 있는데 지금 현재도 하루에 100만캔씩 팔리고 있다고 한다.

 

벤 호건과 함께한 아놀드 파머 (1966년 오거스타)

 

필드에선 카리스마 넘치는 신사였지만 엄청난 흡연으로 유명했고, 경비행기를 오랜 시간동안 직접 조종하며 골프 대회를 다닐 정도로 비행 그 자체를 즐겼던 모험가이기도 했는데 조종사 자격증 취득 후 여러 종류의 비행기를 몰며 기록한 비행시간은 총 20,000시간에 이를 정도로 베테랑 비행사였다.

 

조종석에 착석한 아놀드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고소공포증을 갖고 있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비행기 조종사 면허를 취득했다고 한다.

그는 장애물을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돌파하고 극복하는 도전정신을 갖고 있었다. 실력뿐만 아니라 도전과 성취를 즐기는 성격에 성공한 사업가로서 자선사업 등에서 항상 앞장을 서왔기에 그를 향한 미국민들이 사랑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본인 스스로 수많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기도 했지만 평소 눈여겨보았던 선수들에게 본인의 수많은 경험담과 조언을 해주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타이거 우즈와 아놀드 파머 "전설이 전설에게"

 

 

프로 전향을 앞둔 주니어 시절의 타이거 우즈와 조언은 물론 친구처럼 지냈으며 당시 주목 받던 전인지 선수에게도 직접 편지를 써서 격려할 정도로 그는 망설임과 주저함이 없었다.

 

아놀드 파머가 전인지에게 남긴 격려 편지

 

골퍼와 천부적인 사업가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그는 자신과 부인의 이름을 따 미국 플로리다에 여성과 어린이들을 위한 ‘위니 파머 메디컬 센터(Winnie Palmer Hospital for Women & Babies)’를 설립해 사회에도 크게 공헌했다.

 

플로리다 올란도에 위치한 위니 파머 병원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딴 PGA 투어 '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셔널' 컵도 꾸준히 개최해 후배 양성에도 노력했는데 그가 주최한 이 대회를 본 따 수많은 후배들이 뒤따르며 본인의 이름으로 골프대회를 개최하는데 일조했다.

 

골프를 마음껏 응원하고 즐기는 것으로 한 단계 끌어올린 인물로 평가받는 더 킹 아놀드 파머. 

그가 대중에게 사랑받고 기억되는 이유는 자신의 능력으로 축적한 부를 끊임없이 환원하고 최고의 명성고 부를 축적했음에도 불구하고 때론 친근하게 때론 겸손하고 격의 없이 다가서는 그의 인격과 품격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전성기는 물론 현역에서 은퇴한 뒤에도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놀드 파머는 2016년 87세의 나이에 심장질환으로 눈을 감는다. 골프 대중화를 이끈 첫 세대로서 그리고 성공한 프로골퍼로서 베풀었던 선한 영향력으로 인해 그는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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