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전설의 골퍼들
최고의 대가들을 모아놓았다는 의미로 대회명조차도 '마스터스 토너먼트'다.
원래 마스터(Master)라는 단어는 라틴어 마지스터(Magister)에서 유래한 것으로 대가, 감독, 스승, 최고 지휘관(우두머리) 등을 뜻한다.
마스터스는 꽤 많은 상금이 걸려있기는 하지만 상금액수가 최고로 많은 대회는 아니다. 아울러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투어대회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히 손꼽히는 4대 메이저투어 중에서 으뜸으로 친다.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다양한 국적의 PGA투어 프로들과 아마추어 골퍼들이 살아생전 꼭 한 번 출전을 꿈꾸는 최고의 투어무대다.
4대 메이저 골프대회
(마스터스, US오픈, 디 오픈, PGA챔피언십)
일반적인 PGA투어대회와 달리 마스터스는 아마추어 골퍼도 출전이 허용된다. 물론 선택된 소수이기는 하지만...
미국 동남부 조지아주 오거스타라는 소도시에 위치한 ‘오거스타 내셔널’에서 해마다 4월에 개최되는데, 이때 피어난 봄꽃으로 골프장 곳곳이 만개해진다. 다른 투어대회는 때때로 장소를 바꿔가며 치르기도 하지만 마스터스는 오직 이곳 오거스타 내셔널에서만 개최된다.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
140헥타르(약 42만평) 대지에 18홀로 조성된 오거스타 내셔널은 한명의 전설적인 골퍼와 그의 친구이자 월스트리트에서 주식중개인으로 활약하던 한 투자가에 의해 설립됐다.
전설의 골퍼 바비 존스와 오거스타의 독재자 클리포드 로버츠
20세기 초반 아마추어 골퍼로서 이름을 날리던 바비 존스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투어무대에서 은퇴를 결정하고 조용히 골프를 즐길 곳을 물색한다. 미국과 영국을 오가며 권위 있는 투어대회를 연이어 제패한 뒤 당대의 영웅이 되었던 그는 수많은 군중(갤러리)들의 시선을 피해 조용하고도 여유롭게 골프를 칠 수 있는 안식처를 원했다.
프로를 능가하는 아마추어 골퍼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바비 존스는 직업 변호사이기도 했는데 그는 자신을 포함 5인의 설립위원회를 구성해 1931년 골프장 건립에 착수했고 2년 만에 오거스타를 개장한다.
이 5명의 위원 중에는 월스트리트에서 주식중개인으로 활약하며 자수성가한 클리포드 로버츠가 합류해 있었다. 그는 오거스타 내셔널을 세계 최고의 골프장으로 만들고 마스터스 토너먼트를 세계 최고의 투어무대로 키워낸 장본인이다.
19세기 후반 5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난 로버츠는 학업을 중퇴한 뒤 의류 판매원을 거쳐 석유중개상을 하면서 사업 밑천 마련에 성공한다. 물건을 파는 소매업을 넘어 대규모 중개업에 눈을 뜬 그는 20대에 월스트리트로 진출해 주식중개인으로 큰 부자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클리포드 로버츠는 37살에 바비 존스와 함께 골프장을 건설에 착수한 뒤 평생 동안 클럽회장을 역임했는데, 1977년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오거스타 내셔널 3번 홀 연못 옆에서 권총으로 스스로 삶을 마감한 인물이기도 하다.
사인은 자살이었지만 83세의 노구로 말기암과 뇌졸중에 시달렸던 그는 그렇게 삶의 마지막을 결정할 정도로 완고하고 신념에 찬 사람이었다.
"내가 살아있는 한 모든 골퍼는 백인, 흑인은 캐디일 뿐이다."
클리포드 로버츠가 남긴 말로서 1933년 문을 연 뒤 1974년까지 42년간 오거스타 내셔널에서 흑인들의 플레이는 원천적으로 금지였었고, 이 당시 흑인은 오로지 오거스타 골프장내 필요한 접객원(웨이터, 웨이트리스)과 캐디로만 출입을 할 수 있었다.
로버츠와 오거스타는 골프에서 인종차별을 직접적으로 시연하는 대표적인 인물과 장소로 악명이 높았는데, 그가 죽기 전 로버트 리 엘더라는 한 흑인 골퍼의 마스터스 출전으로 금기가 깨졌고, 20여년 뒤인 1997년 마침내 타이거 우즈가 흑인으로서 첫 번째 마스터스 챔피언으로 기록된다.
오거스타는 인종차별뿐만 아니라 성차별로도 악명이 높았다. 개장 80년이 지난 2012년에서야 비로소 첫 번째 여성회원을 입회시켰는데 주인공은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역임한 콘돌리자 라이스다.
원래 마스터스는 오거스타 내셔널이 계획했던 대회가 아니었다. 골프장 건립당시 대규모로 회원을 모집하려 했지만 때마침
발생한 대공황으로 인해 모집은 참패했고, 또 다른 방법으로 US오픈 같은 투어대회를 유치하려 했으나 이마저도 거부당하면서 골프장 운영은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한 상태였다.
회원모집도 안되고 흥행이 담보된 투어 유치에도 실패하자 로버츠는 설립 이듬해인 1934년 ‘오거스타내셔널 인비테이셔널 토너먼트’이라는 이름하에 첫 번째 투어를 개최한다.
전성기에 은퇴했던 바비 존스와 함께 경기를 진행한다는 방침에 당대의 많은 골퍼들이 앞 다퉈 참가했고 투어는 흥행에 무사히 성공한다. 단 한 번의 투어로 골프장 운영과 관련한 재무 상황에 숨통이 트이자 로버츠는 매년 대회를 개최하기로 마음먹는데 마스터스의 시작이다.
마스터스라는 대회명도 로버츠의 제안이었다. 정작 마스터스라는 단어를 창립자인 존스는 너무 거만해 보인다는 이유로 내켜하지 않았지만 로버츠는 투어대회 명으로 끝까지 관철시켜 1939년 여섯 번째 대회부터 공식적으로 사용된다.
골프장이 들어서기 전 과수원이었던 부지에 들어선 오거스타 내셔널은 현재까지 수많은 확장과 개선을 거듭해 왔는데 마스터스의 인기와 권위가 갈수록 커지면서 지구촌 수많은 골프장의 롤 모델이자 기준으로 자리를 잡는다.
비영리가 아닌 영리목적으로 운영되며 공식적인 회원가입 절차는 없다. 다만 알려지지 않은 자체적인 심사를 거쳐 오거스타의 회원입회가 허락되는데 현재 대략 300명 내외의 인원으로 구성되었다는 것 정도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공개된 회원으로는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렌 버핏, 최초의 흑인여성 국무장관을 역임한 콘돌리자 라이스,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이자 마지막 회원이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제네럴 일렉트릭의 회장 잭 웰치 등이 있고 골퍼로는 잭 니클라우스와 아놀드 파머가 오거스타 내셔널의 정회원이었다.
정치든 경제든 최고위급 인사로 구성된 소수의 회원들과 까다로움을 넘어서는 입회조건과 절차, 회원이나 회원의 초대가 아니면 출입 자체가 불가능한 환경으로 인해 오거스타 내셔널은 폐쇄적인 골프장의 대명사로 손꼽힌다.
로버츠는 언론인들에 대해서도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다. 자신들이 정한 마스터스 토너먼트의 운영에 불만을 표시하거나 비난성 기사를 쓴 기자들은 원천적으로 배제시켰고 취재를 위한 초청대상에서도 제외시켰다. 뿐만 아니라 중계방송 틈틈이 송출되는 광고시간에도 까다로운 제한을 줬다.
TV로 중계되는 마스터스 토너먼트는 수많은 갤러리로 인산인해를 이룬 모습을 볼 수 있다. 골프에서는 관람객을 갤러리라고 통칭하지만 마스터스는 이들을 패트론(후원자)으로 지칭한다.
놀라운 것은 이미 50년 전인 1972년에 수만 명에 이르는 패트론 모집이 끝났고 오직 이들만이 마스터스 토너먼트를 관람할 수 있는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현장관람을 원하는 골프팬들은 오래전에 모집이 끝난 패트론을 통해 티켓을 얻거나 암표시장에 나온 표를 구하는데 4월에 열리는 마스터스 토너먼트의 암표 티켓은 보통 1만 달러를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스터스 토너먼트가 열리는 기간에는 핸드폰과 카메라 소지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며 긴급한 연락은 골프장내에 마련된 별도의 공중전화 부스를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토너먼트 우승자는 시상식에서 전년도 챔피언이 직접 그린재킷을 입혀주는 전통이 있고 게임에 동반자로 나서는 캐디는 흰색 바탕의 한 벌로 된 점프슈트를 착용한다.
투어는 매년 4월 첫 번째 주에 개최되며 그 주의 화요일에 전년도 우승자가 역대 우승자들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는 관례가 있는데 이를 챔피언스 디너라고 한다.
또 한명의 전설적인 골퍼이자 스윙의 정석이라 불리는 벤 호건이 1952년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뒤 역대 챔피언들을
초대해 만찬을 베푼 것이 전통으로 굳어진 것이다.
현재까지 마스터스 최연소 우승자는 타이거 우즈(1997년 21세)이고 최고령 우승자는 잭 니클라우스(1986년 46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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