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함으로 완성되는 베티나르디
로버트 J. 베티나르디. 그는 이탈리아 이민자의 후손으로 기계공학을 전공한 후 가업을 이어받아 1988년부터 기계 및 금속 가공업에 종사해왔다. 베티나르디가 운영하는 회사는 시카고 남부에 위치한 X-CEL Technologies라는 업체로 중장비에 사용되는 각종 기계의 부품, 정밀 금속블록 등을 생산해 오고 있다.
지금 현재 베티나르디는 퍼터브랜드로 자리를 잡았지만 원래는 군수용 부품과 자동차 부품 등을 제작하고 있었다. 애초에 골프클럽 제조는 비즈니스 계획에 없었지만 우연한 계기로 골프샵에 내 걸린 한 장의 광고포스터를 목격한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세계적인 메이저 골프브랜드가 이런 (낙후된) 장비로 클럽을 만든다고? 나에게는 최신형에 더 좋은 기계가 있는데?”
자신의 회사가 보유하고 있던 기계보다 훨씬 낡고 오래된 CNC밀링 머신으로 클럽을 제조하고 있다는 광고를 보고 베티나르디는 클럽(퍼터) 제조를 마음먹는다.
처음부터 자체 브랜드로 나갈 계획은 아니었다. 그럴 수도 없었지만..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모든 골프제조업체에 직접 전화를 걸어 OEM제조를 문의하던 중 한 골프 제조사와 연결이 됐고 짧은 계약기간이었지만 주문자 상표 부착방식으로 퍼터생산을 시작하게 된다.
퍼터의 구조와 제작 노하우를 몰랐을 뿐 이미 금속의 성질에 대한 이해와 가공에 능숙했던 베티나르디는 곧바로 두각을 나타냈고 이 즈음 또 다른 퍼터 제작자와 함께하게 되는데 바로 스카티 카메론이다.
92년부터 98년까지 함께하던 이들은 스카티 카메론의 타이틀리스트 합류로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베티나르디는 이때부터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퍼터를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했는데 헤드 페이스면에 육각형의 벌집구조 모양이 적용된 일명 허니컴구조의 퍼터를 선보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비록 OEM이었지만 높은 완성도로 서서히 입소문을 타던 베티나르디는 2000년대 접어들며 PGA 투어프로들 사이에서 조금씩 실전에서 사용되었고 필 미켈슨을 비롯해 매해 한두 번씩 우승클럽(퍼터)으로 등극하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것은 2003년 US오픈에 출전준비를 하고 있던 짐 퓨릭의 갑작스러운 퍼터 교체사건이었다. 대회 시작 전 짐 퓨릭이 소지하고 있던 말렛퍼터가 USGA(미국골프협회)에 의해 부적합한 클럽으로 판정을 받으면서 급하게 퍼터를 재수배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전설은 우연에서 시작된다.
본게임을 바로 앞둔 상황에서 짐 퓨릭은 마음이 급해졌는데 때마침 차로 2,30분 거리에 베티나르디 제조공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2003년 US오픈은 시카고 남부에 위치한 올림피아 필드에서 열렸다.)
US오픈을 코앞에 두고 베티나르디와 함께 하루 종일 퍼터 제작과 테스트에 몰두했던 짐 퓨릭은 마침내 스테인리스 스틸 페이스에 알루미늄 바디가 적용된 와이드 바디 말렛 퍼터(모델명 베이비 벤)를 손에 쥐는데 성공한다. 물론 USGA의 클럽 룰에 적합판정을 받은 퍼터다.
골프클럽 중에서도 퍼터는 쉽게 바꾸지 못하는 클럽이다. 상황이 상황이었던 만큼 스폰서 계약도 없이 급하게 마련한 이 퍼터로 짐 퓨릭은 생애 처음이자 유일한 메이저 대회 우승(US오픈)을 거두었고, 이 헤프닝은 한편으로 베티나르디 퍼터에 대한 세간의 평가와 인식을 재고하게 만들었다.
당시 벤 호건(Ben Hogan by Bettinardi) 골프와 협력관계에 있던 베티나르디는 계약이 끝난 2006년도부터는 미즈노와 파트너십을 체결하면서 전문 퍼터 제작사로 입지를 굳히게 된다. 지명도가 없었을 뿐 다양한 골프브랜드사의 OEM작업을 통해 베티나르디의 퍼터 제조 능력은 상당수준으로 무르익고 있었다.
베티나르디는 미국과는 별개로 90년대 후반부터 이미 일본에서 유명세를 타케 되는데 당시 일본투어골프의 간판이었던 마루야마 시게키의 우승클럽으로 등재되면서부터다. 사실 베티나르디 역시 스카티 카메론처럼 설립초기 일본 골프 시장에서 먼저 주목을 받은 케이스다. 이를 인연으로 베티나르디는 일본 내 골프시장을 겨냥한 한정판을 특별하게 공개하고 있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역시 카메론과 비슷하게 이제 막 태동하는 퍼터브랜드로서 효과적인 마케팅과 홍보를 펼칠 수 없던 시절이었지만, 당시 골프클럽 유통업에 종사하며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던 한 일본인에 의해 일본 골프 용품시장에 성공적으로 데뷔할 수 있었다. (현재 그는 베티나르디 일본지사의 대표로 있다.)
베티나르디의 퍼터들은 설립초기부터 미국(시카고)에서만 생산하는 원칙을 완고하리만치 고수하고 있다. 진짜 Made in U.S.A인 셈이다.
짐 퓨릭과의 인연으로 제대로 브랜드를 알리기 시작한 베티나르디는 맷 쿠차, 제이슨 코글락, 프레드 커플스, 조지 칸카스, 콜린 모리카와, 매튜 피츠패트릭 등 많은 투어프로들이 사용하면서 21세기에 접어들어 저변을 꾸준히 확대해왔다. 지금까지 PGA투어에서 베티나르디 퍼터로 프로골퍼들이 우승한 횟수는 대략 70여회 정도.
우연히 목격한 포스터 한 장으로 시작해 주문자 상표 부착방식(OEM)으로 여러 브랜드의 퍼터를 제작하면서 노하우를 익히고 결정적인 단 한 번의 기회에 메이저챔피언의 퍼터로 등극한 베티나르디.
시카고 인근에 위치한 그의 공장은 여전히 군수품과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고 있지만 지금현재 주력품은 자신의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진 퍼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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