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 샤프트 퍼터와 캐비티 아이언을 만든
퍼팅을 많이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무게중심과 샤프트넥의 위치에 따라 이동 궤적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끊임없이 고민한 공학도가 바로 핑의 설립자 솔하임이다.
설립자 '솔하임'은 '핑'이라는 골프 클럽 장비에 의미를 두고 인생을 새기는 장인이였다.
최근 3~4년 사이 골프 클럽 브랜드 중에서 골퍼들에게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브랜드가 핑이다. 핑은 미국의 엔지니어이자 발명가였던 카스텐 솔하임(karsten solheim)에 의해 창시됐다. 그는 자신이 보유한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골프클럽 제작에 공학적 개념을 제대로 접목시킨 것으로 평가받았던 골프광이었다.
1913년 유럽을 출발해 대서양을 건너 미국 뉴욕으로 향하던 이민선의 수많은 이민자 중에는 노르웨이 국적의 가난한 일가족이 탑승해있었다. 좀 더 나은 환경을 위해 거친바다를 횡단하던 이 가족 구성원 중에는 이제 막 갓난쟁이를 벗어난 2살짜리 사내아이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카스텐 솔하임이다.
주섬주섬 챙겨온 낡은 옷가지들과 약간의 돈이 전부였던 이 가족의 가장은 곧 구두수선공으로 일을 하며 고달픈 이민생활을 시작했다. 노르웨이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인으로 자란 카스텐 솔하임은 엔지니어를 꿈꾼다.
청년으로 자란 카스텐 솔하임은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워싱턴 대학교 입학에 성공하지만 1929년 미국에 덮친 대공황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했다. 당장 생존을 위해 끼니부터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그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구두수선 일을 도와가며 생활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10여년 뒤인 1940년대 이번에는 미국이 제 2차 세계대전에 본격적인 참전을 결정하고 혼란한 전시상황 속에서 가난했던 카스텐 솔하임에게 우연찮게 기회가 주어지는데 바로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실시한 전시 특별전형을 통해 학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성실하게 학업에 임했고 졸업 후 마침내 에디슨이 세운 제너럴 일렉트릭GE(General Electric)에 입사 그토록 염원하던 엔지니어로서의 첫 발을 내딛는다.
여담으로 인류문명에 커다란 혁신을 이루며 영향을 끼친 발명가로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창업자인 토마스 에디슨을 꼽지만 골프에선 카스텐 솔하임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여느 이민자들의 자식들처럼 카스텐 솔하임 그 역시도 무거운 책임감을 부여받고 열심히 생업에 종사하며 사회생활을 이어거던 중, 그는 중년인 42세 늦은 나이에 직장 동료들의 권유로 뒤늦게 골프에 입문하게 된다. 그리고 곧 골프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는데 그에게 골프는 거칠고 힘겨운 삶속에서 처음으로 접한 평온함속에 즐거움이었고 아주 재미있는 여가활동이자 게임이었다.
동료들과 틈틈이 골프를 즐기던 솔하임은 그러나 곧 엔지니어의 자세로 자신이 쓰던 퍼터에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당시만 해도 헤드의 중심이 아닌 헤드의 끝부분에 클럽의 샤프트가 장착된 L자형 퍼터가 일반적이었는데 문제는 이런 형태의 퍼터는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려 있어서 일정한 방향으로 퍼팅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퍼팅에 있어서 일관성 있게 골프공이 굴러가길 원했던 솔하임은 퍼터의 중심부에 샤프트를 장착하는 것이 최선이자 이상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곧바로 퍼터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그는 퍼터 헤드의 무게중심을 균형감 있게 잡아내는데 성공한다.
이렇게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퍼터가 핑 1-A모델이다. 핑 1-A는 다섯 조각의 철판을 연결해서 만들었고 헤드의 내부가 비어있는 중공구조로 되어있었다. 그리고 퍼터의 바닥면인 솔 부분에 부드러운 타구감을 위해 두 줄의 빈 공간을 만들었는데 공을 칠 때마다 핑~ 울리며 독특한 소리를 냈다.
캘리포니아 레드우드 시티에 위치한 자신의 집 차고에서 직접 제작한 이 퍼터를 테스트 해 본 후 퍼팅할 때 났던 '핑(ping)' 소리를 그대로 클럽의 이름으로 쓰게 되는데 오늘날 '핑' 골프의 시작이다.
1959년 이렇게 탄생한 솔하임의 첫 번째 작품은 곧 입소문을 타고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투어골퍼들까지 제작을 의뢰해 사용하는 퍼터가 되어 갔다. 핑의 첫 번째 퍼터가 등장하고 3년만인 1962년 당시 PGA에서 활약하던 존 바넘(John Barnum)에 의해 핑은 클럽으로서 등장이후 첫 번째 투어우승에 기여한다.
좀 더 정확한 퍼팅을 위해 시작된 솔하임의 클럽 개발은 아이언 제작으로도 이어졌는데 바로 오늘날 캐비티 아이언의 효시가 되는 69 아이언이 이 당시에 만들어진다.
블레이드 아이언이 주류로 사용되던 시절 헤드의 중심부를 일정하게 파낸 형태로 제작된 이 아이언은 본격적인 캐비티 아이언이 선보이기 전 단계의 모델로 헤드의 무게를 헤드 주변부로 분산시킨 첫 번째 클럽으로 등극한다.
한편 엔지니어로서의 호기심과 문제의식으로 시작한 퍼터개발은 계속 이어져 1966년에 헤드의 앞뒤 즉 '토우'와 '힐' 의 이상적인 무게배분(밸런스)을 제대로 구현시킨 그 유명한 앤서(Anser)를 발표했다.
오늘날 수많은 퍼터제조사나 클럽 브랜드들이 퍼터를 제작할 때 일자형 디자인의 기본이자 원형으로 삼는데 블레이드 퍼터의 조상이자 롤 모델이다. 퍼터의 형태를 비롯해 헤드의 폭은 여러 가지로 변형되어 왔지만 핑이 제시한 무게배분의 원칙은 지금 현재도 그대로 참고되어 퍼터가 제작된다. 그래서 지금도 일자형 퍼터를 지칭할 때 흔히 앤서형 퍼터라고 부른다.
정답을 의미하는 앤서(Anser)는 단어에 W를 생략했는데 원래 정답(answer)이라는 단어를 전부 퍼터에 전부 새겨 넣기가 곤란함을 느낀 솔하임 부인의 제안으로 W가 생략된 채 그렇게 모델명이 굳혀졌다. 퍼터의 개념을 바꾸고 기준을 세운 앤서 퍼터는 등장이후 1967년 줄리어스 보로스(Julius Boros)가 PGA 투어 피닉스 오픈(Poenix Open)에서 PING 퍼터를 사용하여 우승을 거두고 우승 클럽으로 소개되면서 시장의 확실한 주목을 받았다.
직장에 계속 근무하며 클럽을 연구하고 개발하며 투잡 생활을 이어가던 솔하임은 투어 우승 후 폭발적으로 밀려드는 앤서 퍼터의 엄청난 주문수요를 감당 못한 나머지 결국 다니던 직장인 GE를 퇴사를 결심한다. 그리고 피닉스에 핑 브랜드의 클럽 제조사인 카스텐 제조공업(Karsten Manufacturing)을 설립하며 본격적인 골프 비즈니스를 펼쳐가기 시작한다.
엔지니어 출신이었던 그는 클럽개발에 과학적 원리를 접목시켰고, 그가 발표하는 클럽마다 연이은 성공을 하게 되면서 다른 골프장비 제조업체들은 발표가 곧 기준이자 표준 그 자체가 되어버린 핑의 혁신을 뒤따른다.
69아이언에 이어 9년 만인 1969년 좀 더 다듬은 형태의 캐비티 아이언인 카스텐 1이 선보이며 성공을 거두는데 핑은 퍼터전문 브랜드에서 명실 공히 골프클럽 제조사로서 기반을 다지는 토대를 마련한다. 연이어서 선보인 후속모델 핑 아이(PING Eye) 아이언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핑은 골프업계에 메이저 골프클럽 브랜드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게 된다.
핑 아이(Eye) 아이언은 클럽 페이스 뒷면이 ‘눈’모양으로 되어있고, 두 번째 시리즈인 Eye 2 아이언은 당시 가장 많이 판매된 베스트셀러 클럽으로 이름을 올린다.
카스텐 솔하임의 혁신과 핑이 선보인 클럽의 성능에 매료된 수많은 골퍼들에 의해 7,80년대 핑은 창립이후 첫 번째 전성기를 누렸다. 당시 열렸던 40번의 메이저 대회 중 절반 이상이 바로 이 핑 퍼터를 사용한 골퍼에게 우승컵이 돌아갔고 등장이후 지금까지 PGA 투어에서 핑 클럽으로 투어프로가 우승한 예는 일일이 열거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많다.
가난한 이민 2세대로 핑을 메이저 골프클럽 브랜드로 키워낸 카스텐 솔하임은 본인이 거둔 엄청난 성공에 도취되지 않고 미국의 수많은 대학교와 LPGA 투어 등을 후원하는데 앞장섰다.
1990년에는 라이더 컵을 본 따 자신의 이름으로 된 솔하임 컵을 창설하는데, 솔하임 컵은 미국과 유럽의 여자 프로골프 대항전으로서 2년마다 미국과 유럽 양 대륙을 오가며 개최된다.
핑은 자사가 생산해 낸 퍼터를 사용하여 투어에서 우승한 골퍼들에게 감사를 표하고자 아주 특별하면서도 의미 있는 기획을 생각해내는데, 그것은 바로 핑 퍼터로 우승한 골퍼들에게 24K 금으로 도금한 퍼터를 소장용과 증정용 2개로 만들어서 승리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영원히 기념하는 컬렉션이다.
피닉스에 위치한 핑의 본사에는 금장 퍼터 보관실(The Gold Putter Vault)이 있는데 이 룸은 핑이 후원하는 골퍼들이 전 세계 골프대회에서 실제 사용됐던 퍼터들을 특별 제작해 보관해놓은 곳이다.
이 금고에는 한국 투어 골퍼들의 퍼터들도 있는데 정희원, 박성현, 송영한, 전인지, 김인경, 유선영 선수를 비롯해 타이거 우즈, 버바 왓슨, 로레나 오초아, 리 웨스트우드 등 현역은 물론 전설적인 골퍼들이 쓰던 퍼터들이 무려 3,000개 이상 소중히 진열되어 있다.
핑의 볼트(Vault) 퍼터 시리즈는 바로 이 금고에서 시리즈 명칭을 따왔다. 이 금고에는 퍼터뿐만이 아니라 우승에 사용된 웨지도 보관되어 있다. 1986년도 백상어 그렉 노먼을 꺽고 트로피를 들어 올린 밥 트웨이는 당시 벙커샷 홀인으로 우승을 거뒀는데, 핑은 센스 있게 퍼터 대신에 그가 쓰던 웨지를 금장으로 만들어 트웨이에게 선사했다.
또한 2013년 캐나다 오픈에서 2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리던 헌터 마한이 출산이 임박한 아내를 돕고자 대회를 포기했을 때도 핑은 퍼터를 제작하는데 가족을 위해 게임을 중도 포기한 이 젊은 골퍼와 태어난 새 생명을 역시 핑은 자기들의 방식으로 멋지게 축복해준다. 이 퍼터에는 대회 명 대신에 ‘조이 올리비아 마한’이라는 딸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이니셜로 새겨졌다.
“많은 이들은 세월이 흘러가면 어느 때 누가 우승했는지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곳을 만들어 보존하는 이상 우리의 클럽으로 우승한 챔피언들은 우리가 절대로 잊지 않는다.”
골프클럽 제조사 대표이자 디자이너 카스텐 솔하임의 골프 철학이다. 제 2의 고향인 미국에서 이룬 엄청난 성공과 클럽 개발의 기초를 세운 카스텐 솔하임은 1995년 자신의 세 아들 중 막내아들에게 회사의 경영권을 물려준다. 그리고 5년 뒤인 2000년 파킨슨병으로 그의 나이 88세에 영면에 들었다. 카스텐 솔하임은 그 명예에 걸맞게 이듬해인 2001년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다.
핑은 자신들이 생산한 골프클럽을 G, I, S로 세분화 시켰다. G는 제너레이션(Generation) 즉 다음세대를 뜻하는 것으로, 핑을 사용할 새로운 세대를 생각하며 개발된 클럽을 의미하고 I는 이노베이션(Innovation)을 의미하며 기술적 혁신을 뜻한다.
S는 창업자인 솔하임(Solheim)의 S와 골프 스코어(Score)의 S 두 가지를 뜻한다. 스코어를 줄여보고자 하는 열망을 클럽의 코드명에 담았는데 핑 골프클럽의 상급자 라인이다. 블레이드 퍼터의 기준을 확립하고 캐비티 아이언을 탄생시킨 핑은 2010년 후반에 들어서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맞이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선보인 혁신에 힘입어 골프는 좀 더 정확해졌으며 진일보했다는 점이다.
'골프장비 브랜드 > 아이언 웨지 퍼터' 카테고리의 다른 글
PXG 0317 T 아이언 살펴보기 (0) | 2024.02.05 |
---|---|
코스트코 '커클랜드' 풀세트 골프채라니... (0) | 2024.01.23 |
퍼터시장을 장악한 오디세이 (0) | 2024.01.05 |
투어프로의 주문제작 클럽 '미우라' (0) | 2024.01.04 |
아이언하면 미즈노, 미즈노 골프의 역사 (0) | 2023.12.20 |
V300 아이언 명가 '브리지스톤 골프'의 역사 (0) | 2023.12.19 |
오디세이 '투볼 퍼터' 탄생 과정 (0) | 2023.12.17 |
명품 퍼터 '베티나르디' 이야기 (0) | 2023.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