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스포츠의 산증인 '미즈노'
미국의 윌슨과 나란히 해 온 역사입니다. 일본의 근대 스포츠사를 함께한 브랜드 미즈노의 로고는 비상하기 전에 새의 모습을 닮았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이 로고의 정식명칭은 런버드. 역동적인 달리기와 자유로운 새를 형상화해서 디자인했다고 한다.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로고 못지않게 유명한 이 런버드 로고 말고도 미즈노 골프가 내세우는 “너의 아이언을 믿어라”라는 광고카피는 광고업계에서도 인정하는 아주 강렬하고 자신감 넘치는 문구이자 슬로건이다.
1884년 일본 기후현 오가키시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미즈노는 9살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남은 어머니, 남동생과 함께 힘겨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그는 12세에 초등학교를 자퇴한 뒤 곧바로 오사카에 위치한 약재 도매상에 취직해 일찍부터 상인의 길을 걸었다.
매우 어린 나이였지만 꾸준하고 성실하게 업무에 종사했던 미즈노는 능력을 인정받아 14세 때 구매에 관련된 모든 업무를 총괄했다. 사회생활 첫 시작을 약재상에서 경험했던 미즈노는 2년 뒤 교토에 위치한 직물 도매상으로 자리를 옮겨 점장으로 승진됨과 동시에 상인으로서 좀 더 숙련된 경험을 쌓아나간다.
그리고 미즈노는 이곳에서 사업가로 자신에게 적용될 두 가지 원칙을 배우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접대금지’와 ‘할인금지’였다. 상거래에 있어 원칙과 기본은 편법이 아니라 바로 신용과 신뢰라는 점을 그는 이처럼 어렸을 때부터 터득했고 평생을 실천했다.
서양문물이 활발하게 전해지던 20세기 초. 일본에서는 미국에서 들어온 야구라는 신개념(?)의 스포츠가 학원가에서 대유행하고 있었고 때마침 10대 후반이었던 미즈노에게 야구는 색다름을 넘어 강렬함 그 이상이었고 결국 자신의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단초가 된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던 미즈노에게는 거대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1904년 발발한 러·일 전쟁이다. 청년 전투원으로 참전했던 그는 천신만고끝에 부상으로 귀가 조치되면서 다행히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고, 생사를 넘나드는 이때의 경험은 자신의 꿈을 미루지 않고 곧바로 실행에 옮기게 되는 계기가 된다.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미즈노는 비록 빈털털이 신세였지만 어렸을 때 부터 쌓아온 정직과 신용의 힘은 강력했었고 주변의 신뢰와 도움 속에서 동생과 함께 자신의 가게를 개업하는데 성공한다.
미즈노의 역사는 1906년 미즈노 리하치와 그의 동생 미즈노 리조가 오사카에 미즈노 브라더스라는 작은 체육사를 세운 것에서 부터 시작됐다.
미즈노 형제가 개업한 이 자그마한 가게는 각종 야구용품을 포함해 수입 서양 잡화를 취급 판매했는데 때마침 시대적 흐름을 타고 건실하게 성장한다. 유통업으로 시작했지만 꾸준하게 늘어만가는 수요에 미즈노는 점원시절 자신과 함께 일했던 봉제기술자를 합류시켜 운동복까지 직접 생산하게 되고 사업은 제조업으로 확장됐다. 골프에서는 아이언이 유명하지만 미즈노는 이처럼 야구용품 판매와 제조를 기반으로 출발한 회사다. 창업자 미즈노의 야구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투영되었음은 물론이다.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선수였던 루 게릭이 미즈노가 제작한 야구글러브를 사용했었다는 일화가 유명한데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어 있는 루 게릭이 썼던 글러브에는 미즈노 형제의 영문 이니셜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형편상 학교를 다닐 수 없었기에 제대로 된 정규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미즈노는 늘 깨어있고 실천하는 기업인이었다. 사업기반을 확고히 다지게 된 그는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직접시찰을 다니면서 항상 준비했고, 시대흐름과 변화를 한발 앞서 읽으려 노력했다.
1920년대부터 올림픽 경기를 후원했던 미즈노는 1927년에는 스키 장비 제조를 시작했고 마침내 1933년에는 일본최초로 골프용품을 생산해내는데 '스타라인'모델이다. 21세기 현재 현존하는 수많은 골프 브랜드들이 세상에 존재조차 하지 않았을 때 미즈노는 이미 골프클럽을 제조하고 있었다. 야구에서 시작된 스포츠 용품제조는 스키와 골프를 거쳐 테니스, 배드민턴, 축구, 배구, 복싱, 탁구, 육상 등 다양하다.
역사와 전통도 오래되었지만 한 분야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혁신이 1세기가 넘도록 이어져오고 있다는 것, 그것이 지금까지 미즈노가 스포츠 용품업계에 존재하는 강력한 원동력이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일본정부의 요청으로 글라이더까지 제작했던 미즈노는 전란의 와중에 한 때 부엌용품과 생활용품까지 제작한 이력을 갖고 있다.
골프용품을 제조하는 브랜드사들은 각기 잘 만드는 클럽이 있는데 미즈노는 그중에서도 특히 단조 아이언이 아주 유명하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 닉 팔도는 미즈노의 공식 스폰 선수였으며 1990년대 수많은 투어프로들이 미즈노 아이언을 애용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미즈노가 생산해낸 아이언들은 특유의 타구감과 성능에서 세계의 수많은 골퍼들에게 인정받고 있는데, 그들만의 장인정신을 담아 제품 생산에 꼼꼼함과 철저함을 기하는 특유의 문화와 미즈노만의 노하우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6,70년대 일본의 고도 성장기를 맞이해 골프용품 수요가 늘어나자, 기후현 요로쵸에 있던 미즈노의 스포츠 용품 생산 공장인 ‘요로 재팬(YORO JAPAN)’에 대규모로 골프클럽 제조설비투자를 단행하는데 이 공장은 골프용품 생산시설로는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공장이 된다. 그리고 공장개설을 기념해 최고의 골프클럽을 지향하며 제작한 클럽이 ‘그랜드 모나크’ 다.
메탈 소재로 된 드라이버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 1980년대. 감나무를 주된 소재로 우드 클럽을 제작하던 미즈노는 신소재를 접목한 신개념의 골프채도 선보였는데 카본소재로 된 뱅가드(VANGUARD) 시리즈에 이어 1990년에는 일본 최초로 티타늄으로 제작된 클럽(Ti-110)을 선보였다.
오래기간동안 숙련된 기술력과 철저한 품질관리를 지향하던 미즈노 골프는 1990년대 최전성기를 달리게 되는데 단조 아이언의 명가라는 이미지는 이때부터 단단하게 구축되어 지금까지 이어진다.
미즈노는 크게 3가지 시리즈로 아이언을 출시한다. JPX 시리즈와 MX시리즈, MP시리즈다.
JPX 시리즈 : Joy(즐겁고), Passion(격정적이며), Extreme(짜릿함)
MX 시리즈 : 미즈노(Mizuno) 짜릿함(Extreme)
MP 시리즈 : 미즈노 프로(Mizuno Pro) 상급자 골퍼클럽
가난하고 어려웠던 10대 시절부터 상인의 길을 걷게 되면서도 자신의 꿈을 키우고, 커다란 성취를 맛보았던 미즈노는 1970년 84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눈을 감는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골프클럽이 미즈노가 제조한 클럽이든, 다른 브랜드의 클럽이든 상관없이 '너의 아이언을 믿어라'는 광고카피처럼 확신을 갖고 라운딩에서 제대로 사용해 보는 것~ 아마도 미즈노의 창업자. 미즈노 리하치가 꿈꾸던 세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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